너는 반지하로 돌아와
경찰서에서 억울했던 말들을 게워냈다
억울할만 하지
너는 지하로 내려가던 중
좁은 계단에 쭈그려앉아서
핸드폰 라이트를 켜다 체포되었으니
그리고 지붕으로 펄쩍펄쩍 도적 같아 사라졌어
그냥 내가 마을버스를 타고 떠난 것이지
키 크고 마른 멋쟁이 아저씨
문화제에나 쓰일 법 한
허접하고 얇아 펄럭거리는 긴 칼로
광나는 구두를 긁었다
합의된 콩트 또는 경기와 놀이 같은 것이었다
"좋네 좋아"
​"구두에 난 흠이 좋아?"
흠이 나지 않는 구두가 좋아요 괜찮은 구두
"예능감이 좋으세요, 다음에 또 봐요"
분명히 말해주는 줄 알고 버스기사를 믿었다
버스는 지하철역을 한참을 지났다
역시 친절은 믿을 게 아니야
모두 반갑게 인사해 줬고
처음 와보는 부산이 아닌 곳에 내렸어
킥보드와 여자아이, 뒤쫓는 노인
가족이겠지
종말 같은 분홍 노을이 무서웠다
지름길로 들어섰고
부서지는 모래들,
분명 예전에는 단단했던 모래들이
밟으면 푸석푸석 사라져 발이 깊게 박혀
"여기 지하철 정거장 어떻게 가요?
부산으로 가야 해요"
그 사람은 오래전에 공사가 멈춘 것 같은
높고 낮음이 반복되는 모양의 공사 부지를
삽질하고 있었고
이미 흰색으로 진흙 표면이 말라 있다니까
맞아 나는 사실 여기 와 봤지
들어섰을 때부터 쭉 느꼈어
"저기 보여?
위로 가면 안 돼 밑으로 가야 해 밑으로"
"밑으로 가면 지하철 정거장 위로 가면
절이 있는 산이잖아요
제가 부산 사람인데 왜 이렇게 잘 알게요"
"예전에 내 사람이 이 도시에 살았거든요"
"사찰에도 가 봤나 봐?"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